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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성경 말씀운동

2.성령의 권능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한 두 번째 단계는 그의 삶속에서 성령의 권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현장에는 늘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곤 했는데(행 8:13, 고후 12:12) 그 같은 일들이 초기 복음사역에 큰 역할을 했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야 할 성도들에게서 나타나야 할 성령의 권능은 바로 사랑의 권능입니다. 주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위에서 피 흘리시면서 보여주신 그 사랑의 권능인 것입니다. 어떤 기적도 자신의 목숨을 내주는 희생적 사랑만큼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요 15:13).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바로 이 같은 희생적인 사랑의 권능이 우리에게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거듭난 사람에게서 주님의 이 희생적인 사랑의 삶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 마음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잠 4:23). 그러면 삶도 변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의 변화를 위해서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마음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먼저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라고 해서 그에게서 죄성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롬 7:21-25). 그의 마음속에는 성령의 소욕과 함께 세상적 욕망을 이루려는 육체의 소욕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갈 5:17)

이 말씀처럼 성도의 마음은 치열한 삶의 전쟁터입니다. 즉 타락한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죄성인 육체의 소욕과 복음을 영접하고 거듭난 후 받게 된 새 성품인 성령의 소욕 사이의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변화되어 성령의 권능인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먼저 이 내면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2-1. 육신의 소욕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 5:19-21)

먼저 육신의 정욕은 타락한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죄성으로 교만과 이기심으로 대표됩니다. 과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높아져서 세상의 모든 유익을 다 자기 것으로 만들려 했던 바로 그 교만과 이기심인 것입니다.

첫 번째로 지적된 육체의 소욕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으로 육체의 쾌락을 만족시키려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상 숭배와 술수 즉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의 교만을 나타내는 죄성입니다. 자신이 높아져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극도의 교만인 것입니다.
세 번째는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와 분냄, 당짓는 것, 분리됨, 이단 등으로 세상에서의 성공을 통해 자신이 가장 많은 부귀와 영화, 명예와 권세를 얻으려는 교만과 이기심의 산물입니다. 즉 인간관계에서 생겨나는 온갖 갈등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어디를 가나 크고 작은 다툼과 전쟁의 연속이며 그 전쟁터에는 늘 갈등과 대립과 좌절과 고통이 난무하게 됩니다.
네 번째는 술취함과 방탕함인데 이 역시 술로 자신의 육체를 즐겁게 하려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죄악인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일생을 바쳐 애쓰고 노력하게 하는 육체적 소욕의 본질인 교만과 이기심은 참으로 저급한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남보다 더 높아져서 자신이 가장 많은 유익을 얻으려고 애쓰는 이유는 그 욕구가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사람들의 적극적인 동의 아래 그들의 마음을 조정하게 되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른 채 일생동안 이 악한 사탄의 종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이 세상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어느 분야에도 사탄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일생동안 이 헛된 일들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애쓰며 갈등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영의 눈이 가려진 자입니다. 사탄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기적인 사람을 싫어하게 하면서도 자신의 이기심은 보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서로 갈등하게 하면서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더욱이 교만과 이기심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열매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어떤 열매를 맺는지에 예민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교회 안에서까지 이 이기심의 대립 때문에 교인들 사이의 높아지기 경쟁으로 인한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면 이는 그리스도의 몸을 해치는 죄된 행위입니다.

더 나아가 이 교만이 지나쳐서 예수 그리스도 대신 자신이 교회의 머리 노릇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으려 하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지게 되면 그 결과는 교회를 제도적 종교로 변질시키고 세속화시키려는 사탄의 계략에 휘말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요일 2:15-17). 이들이 이 땅에서의 성공과 영광을 위해 아무리 아우성쳐도 짧은 수명을 다한 뒤에는 다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예루살렘의 왕으로서 수많은 처첩을 거느린 채 인생의 온갖 부귀와 권세와 영광을 다 누렸던 솔로몬이 삶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자신의 지나간 인생을 헛되고 헛되다고 한탄했던 그 고백을 통해 우리는 인생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됩니다(전도서 1장).

여기서 사탄은 자신이 파놓은 육체의 정욕과 그에 따른 삶이 참으로 값 싼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들통날 것을 염려하여 인간들이 이룩해 놓은 이 세상 문명의 외적 화려함을 치켜세우면서 사람들을 다시 죄속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떠나 사탄이 내미는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이처럼 비참한 것입니다.

이제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이 육신의 정욕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날마다 성경을 묵상하면서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삶의 결과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면 자연히 변화된 사랑의 삶의 길을 갈구하게 됩니다. 즉 더 이상 이웃을 그가 지닌 세상적 지위나 여건을 보면서 경쟁자로 여기지 않게 됩니다. 그보다는 그의 내면에 감춰진 죄성을 보면서 불쌍히 여깁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삶의 시작입니다.

결국 말씀의 능력을 통해 육체의 소욕인 교만과 이기심을 버리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면서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 내면의 변화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내면의 변화는 자신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습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성령께서 사랑하는 마음의 변화를 선물로 주십니다.


2-2. 성령의 소욕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육신의 정욕을 버리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면서 사랑의 마음을 선물 받은 그리스도인은 아래에 기술한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를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내게 됩니다.

먼저 성령의 열매인 사랑은 이성간의 사랑이나 형제나 친구사이의 우정의 차원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 사랑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자기 생명을 버리신 주님의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갈 때 성령께서는 주님의 이 희생적인 사랑이 우리 삶속에서 나타나게 하시면서 나머지 여덟 가지 열매도 함께 맺게 해주십니다. 소위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실상은 사랑을 기초한 사랑의 열매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사랑의 여덟 가지 열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먼저 희락은 기쁜 마음으로 성령을 좇아 사는 성도들에게 삶의 활기를 가져다줍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인해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성도들은 이웃과도 화평을 이루게 되는데 이 화평은 사랑을 실천할 때 나타나는 자연적 결과입니다.

한편 오래 참음은 단순한 인내심의 차원을 넘어 불의한 일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심판해주실 것을 믿으며 평안한 마음으로 기다리게 되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또한 자비가 이웃에게 인자하고 관대하게 대하는 것임에 비해 양선은 더 적극적으로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충성은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신실성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온유가 이웃에 대해 상냥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취하는 것인 반면에 절제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늘 자제하는 능력입니다.

육신의 소욕인 교만과 이기심은 죄악의 근본으로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파멸로 이끄는 악한 요인인 반면에 성령의 소욕을 따르면서 맺게 되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모두 이웃과의 관계에서 승리함으로 그들 앞에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보여주게 해주는 성령의 선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같은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시고 준비시키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리게 되는 것입니다.